일상 (23) 썸네일형 리스트형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인생 어른이 들려주는 이야기, 사랑 받은 삶에 대한 이야기 한동안 젊은 작가 수상집을 읽던 때였다. 물론 너무 훌륭한 작품들이었고 소재들도 신선했지만 어쩐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퀴어 요소와 허세처럼 느껴질 정도로 담백한 아이러니한 문장들에 조금씩 실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박완서 작가의 책을 읽고 노련한 작가의 글에 큰 감동을 받았다. 독서 노트 겨울의 희망도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봄이고, 봄을 믿을 수 있는 건 여기저기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봄에의 약속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섭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봄이 다가와서 느껴지는 몽글몽글한 그 좋은 기분을 이렇게 성숙하고 단아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노련한 작가의 글솜씨가 느껴진다. 나는 손님을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은 지나친 공경과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 (중략) 필요한 것이 알맞게 갖춰져 있고 홀로의 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룰루 밀러] 물고기는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다 독서 노트 파도 속에 발을 담그며 불꽃처럼 터지는 초록빛 생물발광*을 일으키고는 했다. *반딧불이처럼 생물이 화학작용을 통해 스스로 빛을 내는 것. 야광충이 많은 밤 해변에서는 바닷물에 손이나 발을 담그면 야광충들이 발하는 푸른빛을 볼 수 있다. 나도 생물 발광을 일으키는 파도에 발을 담그며 해안을 거닐고 싶다. 분류학 용어로 모든 표본을 “모식模式, type”이라고 하는데, 최초의 신성한holy 모식은 영광스럽게도 “완모식完模式, holotype”이라 부른다. 완모식은 같은 종이라 할지라도 절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다고 하는 점이 두렵기도 하고 잔인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고작 이 규칙 한 주 때문에(?) 완모식이라고 불리는 어떤 표본을 일어버리면 그 표본의 완모식은 영원히 상실한 상태가 되어버린.. [데몰리션] 완전한 회복에는 완전한 분해가 필요하다 시작부터 연출이 정신없다고 느꼈다. 휙휙 전환이 일어나고, 눈 아프게 화면이 깜빡거리고, 시간의 순서마저 불친절했다. 이런 정신 없는 연출이 이 영화 전반을 이룬다. 나는 이러한 연출이 삶에서 겪고 싶지 않은 엄청난 슬픔을 겪은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슬픈 일을 겪은, 아니 당한 사람은 사실 그 일에 마구 구타 당한 기분이다. 그래서 상상 속 시련의 주인공처럼 마음껏 애도하고 슬픔에 잠겨있을 수 없다. 그냥 조금 어지럽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휘청휘청 살아간다. 주인공도 그랬다.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맞이했다. 차라리 밥을 굶고 수염이 지저분하게 자라고 회사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일상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편이 덜 슬퍼보였을거다. 주인공은 너무도 평온하게 보.. [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 무계획에서 얻어낸 삶의 진리, 그 위를 넘실대며 살아가는 인생 1회독 믿고 보는 김영하의 여행 수필이었다. 안정된, 심지어 꼭대기 쯤에 도달해 있는 서울의 삶을 정리하고 삶의 거처를 옮기는 그 용기가 무엇보다 가장 존경스러웠다.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나에게 절대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결심이었다. 그리고 그 옆을 묵묵히 지키는 김영하 작가의 아내는 그 둘 사이의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확고한지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정말 괜찮은 사람인 김영하는 정말 멋진 사랑을 하고 있구나. 이탈리아의 지명이나 관광 명소들의 이름은 너무 어려워서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기록하고 들려주는 이탈리아의 모습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 와 비슷하다. 뜨겁지만 건조해서 끈적거리지 않는 내가 좋아하는 날씨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고 일상의 소소함.. [소마 - 채사장] 소마의 인생으로 보여준 현대 사회 속 인간의 삶 2022.05.10 청년이 된 사무엘이 어서 뭔가 능력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헤렌같이 가진 상태로 태어난 놈이 잘 되는 꼴을 보고싶지 않다. 2022.05.17 소마는 너무 힘든 삶을 살았다. 유년기 소마의 내면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소마는 왠지 특별한 인물일거라고 예상했다. 신이 깃들어 있는 아이라 커서는 세상을 호령하고 모든 인간과 달리 유한한 삶을 살 것 같았다. 그게 책의 주인공다운거니까. 그래서 오히려 그 굴곡진 삶이 후반부의 통쾌함을 가져다줄 유의미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가의 말에 따르면 유년기를 이미지처럼 묘사한 이유는 모든 사람들의 유년기가 그렇게 기억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 잊고 있었지만 나도 그런 유년기가 있었고, 유년기의 나는 내면에서 내 나름대로의 성숙함과 논리를 가지.. [아라의 소설 - 정세랑] 한 줄 메모 룸메이트를 본명 대신 이니셜로 부르면 〈스파이더맨〉의 캐릭터처럼 느껴지고, 또 우리가 뉴욕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즐거웠다. 나도 엠제이도 뉴욕에 가본 적은 없었다. 나도 명주를 엠제이라고 불러야겠다. 나의 내면은 언제나 파고가 낮고 평이하게 즐겁다 나의 내면도 파고가 낮고 평이하지만 즐겁진 않다. 그렇지만 싫지도 않다. 라고 몇주 전에 생각했다. 지금 나의 내면은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낮고 평이한 상태가 얼마나 행복한지, 잃고 나서야 알았다. 역시 인간은 소중함을 느끼려면 그것을 잃어야 하나보다. 간사하다. 반대로 높고 험준한 이 상태를 바랄 때도 있었으니까 바라던 바를 이루었으니 이걸 즐겨야겠다. 인간의 눈썹이 얼마나 이상한지에 대해 늘 쓰고 싶었기 때문에 쓴 이야기이기도 하다. 평소에 눈썹에.. [캐빈 방정식 - 김초엽]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머리로는 원인을 명확하게 알면서도 이해하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겪고 읽은 책이다. 원인이 없다는 것이 원인이라서 답답해 죽을 것 같다. 그저 소화되지 않고 명치에 턱- 하고 걸려 있는 것 같은 떡을 꾸역꾸역 넘기는 기분이다. 언니에 대한 애착이 강한 편이라 주인공의 상황에 조금 더 마음이 쓰였다. 어렸을 적부터 똑똑한 주인공의 언니는 우리 언니와 참 비슷하다. 우리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참 똑똑했다. 그래서 뭐든 따라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언니는 임용고시도 한번에 통과하고 안정적인 연애를 하고 큰 흔들림없이 자신의 삶을 잘 지켜나가고 있다. 그 모습이 참 부럽고 멋있다. 주인공에게도 자신의 언니가 그런 존재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런 언니가 불의의 사고로 나와 더이상 ..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