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연출이 정신없다고 느꼈다. 휙휙 전환이 일어나고, 눈 아프게 화면이 깜빡거리고, 시간의 순서마저 불친절했다. 이런 정신 없는 연출이 이 영화 전반을 이룬다. 나는 이러한 연출이 삶에서 겪고 싶지 않은 엄청난 슬픔을 겪은 사람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슬픈 일을 겪은, 아니 당한 사람은 사실 그 일에 마구 구타 당한 기분이다. 그래서 상상 속 시련의 주인공처럼 마음껏 애도하고 슬픔에 잠겨있을 수 없다. 그냥 조금 어지럽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휘청휘청 살아간다.
주인공도 그랬다.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맞이했다. 차라리 밥을 굶고 수염이 지저분하게 자라고 회사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일상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편이 덜 슬퍼보였을거다. 주인공은 너무도 평온하게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척'했다. 이 '척'은 남들에게는 물론, 특히 자신을 속이는 '척'이었다. 자신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전과 똑같은 일상을 살았다. 나는 그가 슬프지 않은 척을 하는 이유가 슬픔을 직면하는 순간 정말 이 슬픔이 현실이 된 것 같으니까 회피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은 고장난 자판기 회사에 말도 안되는 컴플레인 편지를 쓰기도 하고, 슬픔에 잠긴 장인 어른 앞에서 헛소리를 하기도 하고, 어느날은 갑자기 집을 철거하는 인부들에게 돈을 쥐어주기까지 하면서 철거 일을 돕겠다는 황당한 요구를 한다. 자판기 회사에 보내는 컴플레인 편지는 의식의 흐름 그 자체였다. 그 중에는 늘 주변에 존재했지만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들에 대한 내용도 있다. 나도 같은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늘 보이는 하늘, 햇살, 집 안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주인공은 하나씩 자신의 주변에 있는 것들을 부숴버렸다. 처음엔 냉장고, 그 다음엔 장인 집의 화장실 전구, 그 다음엔 자신의 사무실에 있던 모든 전자기기들. 삐걱삐걱 거리면서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는 주인공의 일상은 아무런 개연성이 없어보였지만 결국은 아내와 함께 살던 집의 붕괴에 도달한다.
주인공의 장인이 그에게 해준 말이 있다.
고장난 무언가를 고치려면 그것을 완전히 분해하고 중요한 것을 알아내 역순으로 결합해야 한다.
그는 고장난 자신을 고치기 위해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완전히 분해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중요한 것을 알아냈다. 그동안 애써 외면해 온 슬픔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은 자신의 아내를 많이 사랑했었다는 것을. 그렇게 슬픔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눈물을 쏟고 아내를 추억하고 애도했다. 그제서야 훌훌 털어낼 준비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아직까지 회피중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최면에 걸고 있다. 이건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서 열심히 살고, 나의 모토처럼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당차게 살아가려고 한다. 피곤을 이겨내고 숨이 넘어가게 운동을 하기도 하고 신나지 않으면서 신나는 척 팔을 앞 뒤로 휘적휘적 흔들며 걸어가기도 하고, 괜시리 혼자 막춤을 추기도 한다. 나는 아직 분해를 할 준비조차 되지 않았다. 분해를 하고나면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겠지, 그러고나면 완전히 회복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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