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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책

[소마 - 채사장] 소마의 인생으로 보여준 현대 사회 속 인간의 삶

2022.05.10

청년이 된 사무엘이 어서 뭔가 능력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헤렌같이 가진 상태로 태어난 놈이 잘 되는 꼴을 보고싶지 않다.

2022.05.17

소마는 너무 힘든 삶을 살았다.

유년기 소마의 내면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소마는 왠지 특별한 인물일거라고 예상했다. 신이 깃들어 있는 아이라 커서는 세상을 호령하고 모든 인간과 달리 유한한 삶을 살 것 같았다. 그게 책의 주인공다운거니까. 그래서 오히려 그 굴곡진 삶이 후반부의 통쾌함을 가져다줄 유의미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작가의 말에 따르면 유년기를 이미지처럼 묘사한 이유는 모든 사람들의 유년기가 그렇게 기억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 잊고 있었지만 나도 그런 유년기가 있었고, 유년기의 나는 내면에서 내 나름대로의 성숙함과 논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소마의 유년기처럼 나도 나의 이미지가 있었다.

부모가 없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오갈데가 없다. 어른이 없이는 세상을 살아가기 어려운 유약한 존재인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아주 치열하게 갈구한다고 한다. 그 마음이 안쓰럽고 한편으로는 이미 제 한몸 건사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있음에 다행이었다. 이때 소마가 아무 문제 없이 모라나 한나에게 사랑 받고 잘 자랐으면 그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20년이 훌쩍 지나고 등장한 아틸라의 정체가 소마임이 드러날 때는 이 소설에서 가장 압도적이고 통쾌한 부분이었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부족의 지도자 정도 되는 권위의 까만 얼굴에 검회색 빛의 거친 머릿결이 사방으로 뻣어나가고 있고, 회색빛 눈동자는 강하게 빛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소마의 얼굴을 실제로 본 것처럼 생각난다. 그간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지만 결국은 더이상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아도, 누군가의 신뢰나 사랑을 얻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오히려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중년의 어른으로 자라있어서 다행이었다. 그간 아주 거친 삶을 살아 그곳에 어렵사리 도달한 것이겠지만 결국에는 고지에 도달한 모습으로 보여 오히려 그간의 고통을 보여주지 않은 부분이 고마웠다. 내 인생도 그러고 싶다. 소마의 삶 처럼 내 인생도 어딘가 안정되고 높은 곳으로 훌쩍 뛰어넘어 가 있으면 좋겠지만 소마와 달리 내 인생 책의 주인공은 그 젊은 날의 삶을 모두 살아내야 하고 그 내용을 다 알아야겠지. 어딘가에서 그렇듯 시간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신이니 그 신을 따라 살다보면 언젠가 고지의 중년이 되어 있겠지. 그러길 바란다.

황제의 자리까지 오른 소마의 행보에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유년기의 소마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듯이 노년의 소마도 특별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많은 우여곡적을 지나 그 자리에 올랐으니 더 겸손하고, 사려깊은 지도자가 되어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소마는 여느 권력자와 마찬가지로 고귀한 척하고 자기 자신의 위치만 지키여 아등바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주 초라하게 느껴졌고, 내 상상 속 소마가 쭈굴쭈굴하고 배가 나온 노인으로 바뀌었다. 소마의 인생에 꽤나 강한 유착이 있었던지라 소마의 타락이 나의 타락을 예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더러운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도 흑화되지 않을까. 그런 내 모습이 스스로 씁쓸할 것 같다.

오감을 느낄 수 있는 신체의 모든 감각 기관을 잃은 소마는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소통한다. 그래서 오히려 현실의 몸뚱이와 분리돼 영혼을 갈고 닦는 십여년을 살아간다. 그리고 곧 평안을 찾기도 하고 고통을 달래기도 하고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제서야 지친 자신을 거두어 달라고 부탁했다. 드디어 삶의 끈을 놓고싶어했다. 왜 이제서야 그 말이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라면 그 삶을 진즉에 청년에 끝냈을 것 같은데. 이런 삶도 살고 싶은게 인간이라는 것일까.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결국 나도 그렇게 부득부득 생명을 붙잡으려 애쓰는 사람이 될까봐 무섭다. 소마의 인생에서 나의 인생을 보고, 나의 미래를 생각해보았다. 그 미래는 그다지 꽃밭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