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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책

[눈부신 안부-백수린] 슬픔을 소화할 줄 모르는 어른의 모험

제목과 표지, 백수린이라는 이름이 참 잘 어울리는 책이다. 수채화 같은 그림 속에는 눈 부신 하늘이 담겨 있고, 그 안에 주인공 해미로 추정되는 여자가 만개한 수련처럼 하늘거리고 있다.

 

눈부신 안부

줄거리 

주인공 해미는 사고로 언니를 잃고 와해된 가족들 사이에서 슬픔을 꾹꾹 눌러 삼켜냈다. 그러다 파독 간호사로 G시에 자리잡고 있는 행자 이모가 있는 독일로 엄마, 동생 해나와 함께 이주하여 어린 시절 몇 년을 보낸다. 그곳에서 다른 파독 간호사 이모들과 그의 자녀들과 아주 가깝게 지내고 그 중 레나와 한수를 만나게 된다. 한수는 병에 걸린 자신의 엄마(=선자 이모)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첫사랑을 찾아주기 위해 레나와 해미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렇게 시작된 세 명의 작전은 해미가 갑작스레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끝을 맺지 못한 채 끝나게 된다. 

그리고 그 작전은 30대 후반이 된 해미가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면서 다시 시작된다. 해미 혼자서. 그 과정에서 한국에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 한수가 절박한 심정으로 보냈던 선자 이모의 일기장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본격적으로 이모의 첫사랑인 K.H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그 삶에는 습관처럼 슬픔을 삼켜내느라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해미에게 다정한 손길을 내밀어 주는 파독간호사 친이모와 대학 시절 첫사랑 우재가 있다. 결국 K.H를 찾아내 선자 이모의 마지막 편지를 전해준다. 끝으로 해미는 우재에게 마음을 여는 듯한 장면을 묘사하며 소설이 끝이 난다. 

 

 

기억하고 싶은 단어와 구절들

너무 큰 행복은 옅은 슬픔과 닮았다

 

나에게 행복과 슬픔은 모순적이라는 점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행복할 때는 두렵다. 그 행복에 끝이 있음을 알고 그것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슬플 때는 온전히 그 감정에 몰입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슬플 때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신경 쓸 수 없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해서 슬프다. 

그래서 행복과 슬픔은 긍적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동시에 드는 모순적인 감정이다. 


청신한:  맑고 산뜻하다.

 

청신한 계절이 돌아오면 좋겠다. 


 

사람이 겪는 무례함이나 부당함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물에 녹듯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침전할 뿐이라는 걸 알았고, 침전물이 켜켜이 쌓여 있을 그 마음의 풍경을 상상하면 씁쓸해졌다.

 

회사를 다니며 ‘무언가’ 켜켜이 쌓인 내 마음의 풍경은 회색이고 처량하다


삶의 궤적

이렇게는 계속 살 수가 없다. 이 괴로움 속에서도 나는 내 삶을 근사하게 살아내야 한다.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나의 임무니까.

 

파독간호사로 독일에 간 지 얼마되지 않아 힘든 나날을 보내던 선자 이모의 일기장에 나온 구절이다. 괴롭고 고통 뿐인 삶인데도 근사하게 살아가야 하는 임무는 누가 준걸까. 그 임무를 왜 꼭 완수해야 할까.

이 구절을 읽으며 이런 무력감이 이겨 나를 잡아먹었다고 생각하던 차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문장이 나왔다.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영원히 간직할 것처럼 착각하지만 대개 그것들은 서글플 만큼 빨리 옅어진다.

 

흐려졌다고 해서 그 구름이 영원한 것이 아닌데. 꼭 그때는 그 하늘이 영원할 것만 같다. 한 줄기 빛이 점점 새어나고 있음을 알지도 못하고


(해나) “언니, 원래 사람들은 다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거야.
그중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은 사과를 할 수 있는거고

 

해나가 애엄마가 되고, 언니의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해미는 해나는 어려서 그 죽음이 그다지 슬프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되어 해나에게 사과를 한다. 그러자 해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먼저 사과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먼저 사과를 해준다면 해나처럼 상대의 성숙함을 칭찬해주고 싶었다.